🥂 국가대표 소믈리에 맥주코스, 성수 <퍼멘티드 고스트>

2022.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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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2.

TO.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고 싶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 코스를 즐기고 싶은 드링커님

성수 <퍼멘티드 고스트>에서

국가대표 소믈리에의 맥주코스를 경험해보세요!

소믈리에하면 어떤 주종이 떠오르는가. 아마 당신은 와인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에디터 역시 와인 외의 술에 대한 소믈리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수 서울숲역 근처 골목에서 국가대표 비어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퍼멘티드 고스트>는 그 생각을 뒤바꿔주었다.

퍼멘티드 고스트라는 이름은 발효맥주(fermented)는 항상 곁에 있지만, 만나면 깜짝 놀라는 유령(ghost)과도 같다는 뜻으로 지었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지만 맛 보면 깜짝 놀랄 발효맥주들을 소개하고픈 비어 소믈리에의 마음이 담겨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동중인 비어 소믈리에님은 이 직업이 한국에 더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개월간 성수에서 맥주코스를 실험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하신다.

이곳은 귀여운 유령이 맥주를 들고 있는 포스터로 간판을 대신하고 있다. 작은 건물에 눈에 띄는 큼지막한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 마치 핫한 맥주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연상케 했다. 계단을 올라가보니 아직 새 건물의 향기가 가시지 않은 채 맥주 소믈리에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원형 테이블과 냉장고를 가득 채운 맥주들. 처음 보는 맥주들에 정신이 팔린 채 착석하면 테이블의 독특한 모양에도 눈길이 간다. 사장님이 특별 주문 제작한 테이블이다. 보통 일자형 바 테이블은 다른 일행과 이야기하거나 눈길을 맞추기 어렵지만, 원형 테이블을 통해 소믈리에와의 대화는 물론 다른 일행, 손님과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담겨있는 장소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무엇일까? 기대감이 높아졌다.

2인이 방문했을 땐 보통 디스커버리 코스(45,000원)를 추천한다. 3병의 맥주와 그외 페어링할 수 있는 치즈, 크림, 과일, 빵 등이 함께 제공된다. 물론 자신의 취향이 확고하다면 원하는 메뉴를 골라 뒤쪽 자리에서 마실 수도 있다. 1인당 금액이 아닌 팀별로 책정한 금액이다.

모든 술의 소개는 먼저 병을 보며 맥주에 얽혀있는 역사와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설명이 끝나갈 때쯤 잔에 따라 색과 향을 느낀 뒤 각자의 평을 나눠본다. 마지막으로 페어링 된 음식과 함께 맛보며 맥주의 풍미가 달라지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시에나 네바다 페일 에일

도수 : 5.6%

첫 병으로 꺼내온 맥주는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크래프트 맥주의 조상님 격인 시에나 네바다 페일 에일이다. 금주법이 끝난 1970년대 미국은 양조장이 100개도 채 되지 않았고, 공장형 라거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시에나 양조장 설립자가 1980년대에 미국산 *홉을 처음으로 넣으면서 만든 맥주가 아메리칸 페일 에일과 크래프트 맥주의 시초가 되었다.

병에 그려져 있는 캘리포니아 대자연이 맥주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일류 맥주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술이다. 상큼한 과실 향으로 시작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약하게 따라오는 홉의 쓴맛이 혀끝에서 맴돈다. 마치 자신이 에일맥주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함께 나온 페어링은 올드 빈티지 체다치즈와 스페인의 만체고 치즈다. 체다치즈는 끝에 느껴지는 쌉싸름한 맛을 중화시키고 마체고 치즈는 **몰티한 느낌의 맥주 맛을 더 배가시킨다. 맥주와 치즈? 신선한 조합에 놀랐지만, 치즈 덕분에 맥주 맛을 더 다양하게 느낄 수 있어 놀라웠다. 보통 맥주는 기름진 안주와 함께 입가심용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퍼멘티드 고스트에선 맥주가 주인공이 되어 페어링 안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홉 : 맥주에서 독특한 쓴맛과 향기를 내며 잡균에 의한 산화를 방지하는 장미목과 식물.

**몰티하다(Malty) : 쌀, 밀, 옥수수 등 맥주의 기본 재료인 곡물로부터 느껴지는 향.

베스트말레 트리펠

도수 : 9.5%

두 번째 병은 트라피스트 맥주 웨스트 말레다. 트라피스트 맥주란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엄격한 관리하에 영리 목적이 아닌 전통 생산 방식을 따르는 맥주를 지칭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단 14개의 양조장만이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정받아 병에 인증마크를 달고 출하 중이다.

웨스트 말레 트리펠의 또 다른 특징은 *병입숙성이다. 와인과 위스키에만 있을 것 같은 숙성이라는 개념이 맥주에도 적용된다. 실제로 **빈티지도 존재하며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변하기 때문에 ***버티컬 테이스팅도 가능한 맥주다.

눈과 코로 빛깔과 향을 충분히 느끼면서 귀로는 설명을 들었다. 이제는 입으로 즐겨볼 차례다. 맥주에서 푹 잘 익은 과일 맛이 느껴진다. 살구와 오렌지, 그리고 바나나 향도 느낄 수 있는데, 효모와 과실이 잘 섞이는 병입숙성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다양한 향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효모 덕분에 탄산 방울들이 작고 부드럽게 오밀조밀 모여있는 느낌을 준다. 이전에 코스를 체험하고 돌아간 손님의 말로는 크림브륄레 같다는 평을 남겼다고 한다.

페어링으론 멜론 망고 크림치즈와 산딸기를 얹은 휘핑크림이 나왔다. 멜론 망고 크림치즈는 그 자체로도 맛이 훌륭했고 맥주와 함께 먹었을 땐 맛있게 익은 바나나 향을 더 돋궈주었다. 휘핑크림과의 조합도 놀라웠는데, 휘핑크림이 맥주를 만나자마자 사라지면서 부드러운 청량감을 더욱 크리미하게 만들었다.

*병입숙성 : 병에 술을 담은 후에도 일정 시간동안 오픈하지 않고 숙성시키는 방식, 와인은 물론 발효맥주에서도 병입숙성 방식을 애용한다.

**빈티지 : 일반적으론 해당 와인에 쓰인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한다. 발효맥주에서는 생산 연도를 의미한다. 2020년에 2017년 빈티지 맥주가 나오는 식.

***버티컬 테이스팅 : 같은 종류의 술을 생산 연도에 따라서 순서대로 마시는 시음 방법.

델리리움 레드

도수 : 8.0%

마지막은 병에 그려진 빨간색 코끼리가 인상적인 델리리움 레드다. 실제로 과즙이 들어간 프루트 비어로 채도가 높은 빨간 빛깔을 띠고 있다. 부드럽고 상큼한 질감 덕분에, 도수를 잊은 채 시원하게 들이키기 좋다.

한 모금 들이키니 향에서도 느껴졌던 체리가 존재감을 가득 드러낸다. 마신 뒤에도 입 안에서 약간의 체리 향과 체리 씨앗 같은 아몬드 향도 느껴졌다. 얼마나 향이 강했는지 마스크에도 향이 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델리리움 레드의 향을 즐길 수 있었다. 함께 페어링 된 브라우니는 델리리움 레드를 더 돋보이게 하는 맛이라기보다는 1:1로 동등하게 서로를 보완해주는 맛이다. 술도 페어링 안주도 훌륭한 디저트라 코스의 마무리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