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혜화역 4번 출구를 지나쳐 큰길을 걷다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네이버 지도를 의지하며 갈림길을 몇 번 지나니 독일주택 입구가 보인다. 흡사 외할머니 집 대문 같다.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니 햇살이 가득 들어찬 마당이 맞아준다.

눈으로 봄을 맛 봤으니 이제는 입으로 느낄 차례다. 봄에 어울리는 상큼한 맥주와 밸런스가 좋은 흑맥주, 그리고 커피 대신 맥주가 들어간 콤파냐를 차례로 소개한다.

비주얼만 보면 3rd shot <낙성>에서 만난 내추럴 와인이 떠오른다. 예민한 사람은 시큼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하다. 맛 역시 맥주와 홍초 아이스티 사이의 느낌이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과 맥주 써머스비 청량함의 2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목뒤로 넘긴 뒤에도 청량감이 남는다.

시드르(Cidre)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재배한 사과로 만든 발효주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사이더(Cider), 우리에겐 사이다로 흔히 알려졌지만 주조 방법과 맛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쎄시 시드르는 사과와 배를 노르망디 지역에서 모두 공급받아 제조하며 설탕은 물론 다른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는 글루틴 프리 비건 사이더다.

알코올에 약한 에디터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도수만 비유하자면 이슬톡톡 정도.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거나 식후에 입가심으로 마시기에 적합하다.

셀리브레티 도펠복

도수 : 6.7%

가격 : 14,000원

쎄시 시드르 로제가 <낙성>의 내추럴 와인을 떠올리게 했다면 셀리브레티 도펠복은 1st shot의 <수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복’(Bock)이라는 이름이 붙은 맥주는 제5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사순절 기간에 배를 채우기 위해 독일 수도원에서 제조된 맥주들을 일컫는다.

흑맥주 특유의 초콜릿 향과 함께 묵직한 바디감을 선보인다. 도수가 강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고 끈적하게 혓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는 복 맥주가 유행하던 16세기에 맥주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도수를 높이면서 질감을 끈적하게 주조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훌륭한 흑맥주이다. 흑맥주의 쓴맛보다는 바디감에 집중해서 마신다면 더욱 만족스러울 것이다.

*사순절 : 부활절 이전 40일에 예수의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절기. 빵 등을 먹지 않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간이다.

라스푸틴 꼼파냐

도수 : (라스푸틴 흑맥주) 9.0%

가격 : 10,000원

맥주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시도해보자. 위에 얹어져 있는 크림은 부드러운 촉감과 달콤함으로 첫맛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내 올드 라스푸틴의 묵직함이 들어온다.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꼼파냐에 커피를 빼고 맥주를 넣은 맛을 상상해보면 충분히 이 맛을 짐작할 수 있다. 꼼파냐의 핵심인 커피의 쓴맛과 크림의 달콤함을 흑맥주로 바꾼 아이디어가 좋았다.

흑맥주가 조금은 부담스럽고 올드 라스푸틴이 처음이라면 라스푸틴 꼼파냐로 그 시작을 함께 해볼 것을 추천한다.

즉석에서 만들어 칼로 자르는 순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셀리브리티 도펠복과 함께 마시니 쓴 맥주의 맛과 애플파이의 달콤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쎄시 시드르 로제의 상큼함과도 잘 어울린다.마치 한강공원 잔디 위에서 피크닉을 하는 기분이다.

함께 곁들여 나온 크림은 라스푸틴 꼼파냐와는 다르게 슈크림과 가까운 질감과 맛이었다. 함께 간 에디터는 “디저트 중 봄에 가장 잘 어울린다”라고 표현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뛰어놀 것만 같은 쌍문동(혹은 혜화동) 골목길에 독일주택이 아늑함을 갖춘 채 기다리고 있다. 독일주택의 독일은 홀로 독(獨) 하나 일(一) 을 의미한다. 혼자서 마실 수 있는 테이블도 갖춰져 있으니 이번 봄, 혼자라고 망설이지 말고 혜화로 가보자.

ᑯ 서울 종로구 대명1길 16-4

ᑯ 영업시간

    월-목 16:00 - 24:00

    금 15:00 - 24:00

    토,일 14:00 - 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