떄론 일렁이는 감정 혹은 하루에 휩쓸리곤 한다. 나 혼자만으로는 진정할 수 없고, 무엇을 해도 역부족일 때, 미각은 더욱 예민해진다. 한없이 예민해진 나의 기분과 미각을 달래줄 수 있는 건 뭐니뭐니 해도 맛있는 한 잔이 아닐까.

조용하지만 외롭지 않은 곳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곳이 있다. 사뭇 낯선 술병들이 나열되어있는 술장을 보면, 오기전 갖고 있던 심란함은 잠시 뒤로하고 왠지 모를 설레임이 피어오른다. 맛있는 녀석들만 있기에 뭘 골라도 안심이다. 마치 0점 없는 다트랄까?

타닥타닥 모닥불 앞의 캠핑, 호로록 홀짝이는 카페, 잔잔한 대화가 오가는 서점,

이렇듯 기대감을 갖고 한 잔을 골라 마시면, 마치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것도 같다. ‘다음 술은 뭐 마시지’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며 ‘가장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곰서식지, 남동굴, 곰다방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이곳은 곰매니저님이 운영하시는 석촌의 조용한 아지트, '아워스 케이브'이다. 위스키 덕후들 사이에서 꽤나 사랑받으며 심지어 몇몇 단골들은 이곳에서 친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을 정도이다.

들어서면 아늑하게 꾸려진 분위기와 함께 좀처럼 보기 힘든 독립병입* 바틀들이 빛을 내고 있다. 1부터 10까지의 술들이 준비되어 있기에 이 보물창고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난이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험가의 기질을 가진 에디터는 그런 점이 더 좋다.)

따라서 어느정도 위(스키)력을 가진 분들께 더욱 추천드리는 바이다. 심지어 ㄱ자형 구성, 일자형 구성과 같이 매번 바뀌는 인테리어는 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최대 2인까지의 일행만 받기에 3인 이상은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는 점도 기억하길.

*독립병입(자) : 직접 위스키를 만들지 않고 다른 증류소에서 스피릿이라 불리는 원액을 통째로 구매하여 기존증류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숙성 및 블렌딩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것

🥃 더글라스 랭 올드 파티큘러 2008 블레어아솔 12Y

🥃 도수: 48.4%

🥃 가격: 25,000원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바틀이다. 다른 독립병입 증류소들의 블레어아솔도 맛보았으나, 올드 파티큘러의 것이 가장 화사하고 풍부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저 살짝 높은듯한 도수가 가장 잘 맞아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스헤드* 캐스크의 달큰함과 버터리하고 크리미한 향이 훅 느껴진다. 마치 버터, 바닐라, 흑설탕이 연상되며 그 기저에 깔린 과실향이 빈 공간 없는 구성을 이루어낸다. 기대감을 갖고 홀짝 마시면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인위적이지 않은 보리의 고소함과 열대과일이 달콤하게 혀를 감싼다.

병처럼 자기만의 빛을 확실하게 갖고 있기에 첫 술 혹은 마지막 술로 추천한다. 시작 혹은 마무리를 기분 좋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혹스헤드: 250L 오크통을 지칭하는 단어

🥃 노스스타 임페리얼 24Y 1998

🥃 도수: 49.8%

🥃 가격: 글라스 120,000원

영국의 독립병입자인 North Star Spirits는 총 3가지 라인업을 갖고 있다. 싱글캐스크의 North Star, 블렌디드 몰트의 Vega, 블렌디드위스키의 Spica이다. 이들 중 노스스타 임페리얼은 에디터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주었던 바틀이다.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날, 술을 잔뜩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녀석이다. 세밀한 노트를 작성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였기에 첫인상만을 공유하고자 한다.

정말 불꽃축제 같은 맛이다. 영화 라따뚜이 속 쥐 요리사, ‘레미’가 음식을 먹고 불꽃이 팡팡 터지는 듯한 경험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펑키하면서 쉐리의 진득한 과실의 향이 화사하지만 바디감있게 느껴진다.  

취기 높은 상태에서도 인상적인 기억을 주었기에, 에디터는 한 번 더 마시러 가보려고 한다. 노스스타 임페리얼이 보여주는 맛의 불꽃축제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맛보는 것이 더 환상적일지도. 궁금한 사람은 하프로라도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컴파스박스 스파이스트리

🥃 도수: 46%

🥃 가격: 20,000원

강렬하지 않으나 확실한 개성을 뽐내는 블렌디드 몰트, 스파이스 트리이다. 숙성 과정을 보면 4종의 캐스크에서 숙성시킨만큼 꽤 복잡하지만 맛에서는 그 조화가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입에 머금다 삼키면, 바닐라와 달콤한 과실, 계피가 풍부하게 섞여들며 부드러운 알싸함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라벨 디자인처럼 자신도 모르게 잠식되는 매력을 가진 스파이스 트리는 무난함 속 개성을 찾기에 적격이다. 

🥃 산시바 글렌버기 12Y

🥃 도수: 53.9%

🥃 가격: 30,000원

‘산시바’ 레스토랑에서 접대용 술에 불과했으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독립병입 위스키로도 만들어진 것이 이 위스키의 시초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파이니스트 시리즈는 술에 대한 정보 대신 수채화의 라벨로 구별된다. 홀짝이며 그림 속 증류소 풍경을 보다 보면 마치 그 곳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우선, 쉐리임에도 굉장히 옅은 컬러를 지니고 있다. 향을 맡으면 글렌버기 특유의 달달함과 꿀이 피어오른다. 맛을 보면 시럽과 같은 과실미와 스파이스가 균형있게 자리잡으며 가볍지만 비어있지 않은 한모금을 선사한다. 아쉬울 수 있는 달콤함을 약간의 도수감이 보완해주며 이어지는 피니쉬는 마치 혀에서 바로 녹지 않는 솜사탕과 같았다.

오늘도 아워스케이브에서 잠시 멈추다 간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립병입 위스키들은 마치 나만 알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소중함을 느낀다.

맛있는 한잔, 어쩌면 사장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위로이자 장난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자기 전까지 곱씹고, 음미하다 미소를 머금고 편하게 잠이 든다. 아워스케이브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상상과 함께 말이다.

술이 짜게도, 달게도 느껴지는 인생이라면, 아워스케이브를 방문해보시길.

🔗 INFO

ᑯ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41길 16 1층 
ᑯ 영업시간

  월-금 18:00 - 23:30

  주말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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