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으로 구성된 자그마한 가게다. 입구 바로 앞에 *다찌석이 있고,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4인용 테이블 2개가 놓여있는 정도. 주문 즉시 요리하는 오픈 키친 형태이기 때문에 홀로 다찌석에서 즐겨도 좋다. 커다란 오리엔탈풍 조명의 불빛이 공간 전체를 데워준다. 따뜻하고 아늑하다. 한쪽 벽면에 자리한 90년대 가수의 LP와 빈 술병들은 사장님의 감각적인 취향을 보여준다. 협소하지만, 이야기로 붐비는 곳. 예약을 하지 않으면 헛걸음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인스타그램 DM으로 예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다찌석: 일본에서는 주방장 바로 앞의 카운터 석을 뜻함.

여기엔 독특한 의식이 하나 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술잔을 직접 골라보는 것. 술잔이 30개 정도 놓여있다. 재질도 색깔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저마다 얽힌 사연이 매력적이다. 특히, 육각형 잔은 사장님의 친구분께서 직접 만든 선물이라고. 잔을 골랐다면, 이제 당신만의 추억을 그 안에 담아낼 시간이다. 우선 사적공간의 시그니처 술로 시작해 보자.

직역하자면 ‘봄의 안개’.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봄비를 머금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달달한 과일향이 나는 부드러운 술이다. 사케가 처음이더라도 마시기 편하다. 양조 알코올을 사용하지 않고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어냈다. 최근 유행하는 사케의 특징인 FFJ(Fresh, Fruity, Juicy) 스타일을 그대로 녹여냈다. 한 번에 털어 넣기 보다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사케 특유의 깔끔한 목 넘김 뒤, 잔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이 많다고 부담 가지지 말자. 남은 술을 가져갈 수 있도록 비닐 백에 따로 담아주신다.)

*준마이 : 추가 알코올을 넣지 않고 쌀과 물만으로 빚은 '순수한 술'이라는 뜻.

이름처럼 겨울에만 나오는 제철 소주다. 180일에 걸쳐 만들어진 원주를 다시 180일 저온 숙성시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진 술이다. 덕분에 쌀의 구수하고 달큼한 향내가 난다. 혀가 마비되는 듯한 알싸함이 입안을 감싼다. 얼음과 토닉워터로 조금 더 부드럽게 마시는 방법도 있다. 디자인 때문일까, 하얀 눈으로 가득한 자작나무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고등어봉스시

가격: 23,000원

슈토 크림치즈 (首藤クリームチーズ)

가격: 12,000원

접시 위 자태만 봐도, 이 가게가 음식을 어떻게 대하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다채로운 색상으로 식욕과 술맛을 제대로 돋운다. 슈토(참치 내장젓갈)와 꿀, 비스킷, 크림치즈가 함께 제공된다. 젓갈의 비린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바다 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술안주로 추천한다. 비스킷 위에 젓갈 한 꼬집, 그리고 크림치즈를 올려 함께 맛본다. 제대로 된 한 상 차림에서 맛보는 디저트 같았다. 손이 저절로 사케 잔을 찾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슈토는 ‘술도둑’을 뜻하니까.

술과 안주에만 감탄한 것이 아니다. 사장님께서는 계속해서 한국의 전통술과 와인을 샘플로 내어주셨다. 한국에서 양조하는 스파클링 사과 와인부터 고흥 유자주까지, 요리를 돋보이고 입맛을 더욱 돋워줄 술들만 깐깐하게 선별하신다. 앞서 소개한 요리도 맛있었지만, 서비스 술과 잘 어울리는 요리로 연참마끼와 슈토 크림치즈 조합을 추천받았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여 추천받은 메뉴들을 맛볼 것이다.

시그니처 술과 요리로 인해 예상외의 가격을 지불하긴 했으나,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잘 차려진 음식과 무드 있는 분위기 덕분에 함께 방문한 디자이너 피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완벽한 장소가 있을까.

사적공간

ᑯ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35 성문빌딩 1층

ᑯ 영업시간

    매일 17~21시

    (매주 화요일 휴무)

맛 :  4 / 5

가격 : 2 / 5

서비스 : 4.5 / 5